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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통 마당 구조와 현대 도시 주거 설계의 연결

by hohoho1119 2025. 6. 13.

마당은 공간이 아닌 관계입니다

전통 한옥에서 마당은 단순한 외부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실내와 실외,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감각적 매개 공간이었습니다.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고, 빛과 바람이 드나들며, 가족 간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구조 속에서
마당은 ‘열려 있으면서도 중심을 잡는 장소’로 기능했습니다.

이처럼 마당은 물리적인 크기보다 심리적 중심성을 갖는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계절을 느끼고, 관계를 정리하며, 삶의 리듬을 맞추어 갔습니다.
오늘날의 아파트나 도시형 주택 구조에서는 이 개념이 점점 희미해졌지만,
심리적 안정감과 공동체 의식 회복을 위한 공간적 장치로서 마당은 여전히 유효한 설계 요소입니다.

 

마당의 핵심 기능은 ‘완충’입니다

한옥의 마당은 외부 기후, 온도, 소음, 시선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완충 지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바깥에서 바로 거실이나 안방으로 진입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마당이라는 공간을 ‘거쳐야만’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실내를 보호하며,
동시에 천천히 안으로 유입되는 감각의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현대 도시 주거에서는 현관, 복도, 엘리베이터 등이 이러한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만,
그 감각적 완충 기능은 한옥 마당에 비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마당을 지나 실내로 들어오듯,
사람도 공간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관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선과 거리감을 조절하는 구조

마당은 시선의 흐름을 조절하고, 거리감을 조율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집을 방문하면 곧장 거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당을 지나 대청마루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문자의 접근성과 주거자의 사적 공간 간의 균형이 유지됩니다.

이는 단지 이동 경로가 아니라,
사회적 예의와 감정적 거리 조절이 내포된 동선 설계였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의 오픈 플랜 설계, 1.5세대 가족을 위한 이중 동선 설계,
또는 반투명 벽체로 시야를 조절하는 프라이버시 설계 등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사는 방식으로서의 마당

한옥의 마당은 빛, 바람, 식물, 물 같은 자연 요소가 머무르는 공간이었습니다.
채광이 좋고, 환기가 뛰어나며, 비가 고이고 나무가 자라는 구조는
실내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바람이 돌고, 가을에는 낙엽이 쌓이며, 겨울에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는 곳.
마당은 계절의 리듬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 기반 주거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둘러싸인 폐쇄형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정, 루프가든, 도심형 정원 설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자연과 연결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도시 주거에 커지는 마당의 중요성

도시의 고밀도 구조 속에서도 사람들은
개인적 안정과 심리적 여유를 필요로 합니다.
오히려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에서는
마당 같은 공간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시형 단독주택, 협소주택 등에서
소규모 마당이나 실내 중정(中庭)을 포함한 설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멋진 외관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삶의 질과 감정 조절을 위한 공간 전략으로서의 선택입니다.

 

현대 주거 설계에서 마당 개념을 적용하는 방법

도시 주택에서 마당의 구조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면
몇 가지 핵심 설계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 시선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의 깊이가 필요합니다.
현관을 열자마자 실내가 드러나는 구조 대신,
작은 외부 데크, 복도, 실내 중정 등을 두어 ‘심리적 여유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둘째, 채광과 환기를 고려한 작은 정원 또는 개방형 테라스를 설계해
자연 요소가 내부로 유입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내부와 외부의 연결을 단절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주는 반투명 구조
슬라이딩 도어 등 유연한 공간 경계 장치가 마당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마당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었습니다

과거의 마당은 가족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침에는 마당에서 인사를 나누고, 저녁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린이는 놀고, 어른은 쉴 수 있었으며,
이웃과의 교류도 마당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오늘날 '각자 방 안에서 고립되는' 도시형 주거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작은 마당 하나가 다시 가족을 연결시키는
공간적 중심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국내외 건축가들이 마당을 다시 연구하는 이유

최근 국내외 건축가들은 마당의 공간적 구조보다
그 안에 담긴 사회적·심리적 의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가 승효상은
‘비움이 공간을 채운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마당을
삶의 중심으로 다시 가져오는 설계를 시도했습니다.
유현준 교수 역시 "마당은 관계를 열어주는 구조"라고 말하며,
도시 구조 속에서 정서적 회복 공간으로서의 마당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현대 해석은 마당을 디자인 요소가 아닌 인간 중심 공간으로 복원하려는 시도이며,
주거 공간이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도록 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마당 구조의 심리적 효과

마당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안정된 여백’을 제공합니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가늠하는 공간으로 작동합니다.

최근 심리건강 연구에서도
실내 중정이 있는 주거 구조가 스트레스 회복력, 집중도, 정서 안정 측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당은 단지 정서를 환기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 조절과 자기 회복을 위한 환경 요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도시 주거의 미래, 마당은 다시 중심이 됩니다

앞으로의 도시 주택은 단순히 방을 나열하는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관계를 맺는지를 중심에 둔 설계로 진화할 것입니다.
그 중심에 마당이라는 공간 개념이 다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과거의 마당이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한 구조였다면,
이제는 심리적, 사회적 복원을 위한 핵심 공간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좁은 도심 속에서도 마당을 구현하는 설계는
더 이상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삶의 질을 위한 미래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전통 마당 구조와 현대 도시 주거 설계의 연결